어쩌다 보니 토론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게 내가 토론대회에 참여하게 된 진짜 계기이다. 1, 2학년 때 토론 관련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수강하기도 한 적은 있었지만, 고 3이 되어 토론대회를 준비하고 참여할 줄은 정말 계획 밖의 일이었다. 정치·외교 분야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과 함께 모인 유레카라는 모임의 일부로 이번 토론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토론에 그다지 흥미가 있지도 않았고, 뛰어난 언어구사력을 가진 아이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토론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예선을 준비하는 동안 첫 난관은 이 대회가 채택한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 형식’이었다. 입안, 반박, 요약, 마지막 초점 등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의 역할이 각각 정해져있고, 시간 또한 엄격했다. 함께 토론을 준비한 친구도 토론 대회에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이러한 형식은 처음이었다. 형식 이외에도 예선 주제였던 <서열화 된 입시문화가 학교폭력의 근본원인인가?>는 다양한 의견과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우리 팀 이름인 유레카와도 부합하여, 다른 팀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입안도 4-5번 대폭 수정하는 등 처음으로 참가하는 토론 대회를 준비하기까지 여러 난항을 겪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토론대회 전날에 발생했다. 토론대회를 참가하기로 결정한 그 순간부터 준비하는 기간 동안 토론에 대한 부담을 줄곧 느껴왔던 나였다. 부담감이 극심했던 탓인지, 내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평소보다도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텅 빈 느낌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생각만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간단한 교차질의 질문에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반박을 담당하는 두 번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상대의 의견을 일목요연하게 반박하여 우리 팀의 의견으로 설득하는 그 반박을 내가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토론 전날 밤 11시 우리는 서로의 역할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예선 당일, 난 그날 밤 찬성과 반박의 입안을 외우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입안문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예선에 참가하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예선 1R였던 것 같다. 내 인생 토론 첫 경기이기도 하니까. 지금이라도 덜덜 떨면서 완전히 숙지하지 못한 입안문을 외고 있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시던 시간을 재시던 심판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겪은 긴장과 부담은 한 경기를 치루고 나면서 조금씩 덜어졌다. 적어도 쉬는 시간 40분동안은 말이다. C조와 D조가 번갈아가면서 치룬 경기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었다. 3R가 모두 끝난 후 내가 느낀 해방감은 마치 수능을 끝내 고3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 해방감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본선 진출을 하게 된 것이다. 본선 진출 팀에 호명되면 환호하던 다른 팀과는 달리 우리 팀은 “어떡해..”를 연신 외쳤다. 본선에 진출하면 내심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토론을 준비하면서 밀려둔 공부와 고 3이라는 굴레가 그랬다. 예상치 못한 본선 진출에 그날 밤 본선에 참가할지, 다시 학업에 열중할지 수없이 고민했다. 본선에 올라가고 포기할 거였으면 애초에 왜 참가했느냐고 우리를 비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겐 예상 밖의 본선 진출이었고, 고 3에게 1주일을 또 학업 이외에 쏟는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일이었다. 우리는 입상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즐기자라는 생각으로 본선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이 생각이 크게 작용한 것일까. 우리는 예선 때만큼의 열정을 쏟을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입상에는 실패했다. 본선에 가서 얻은 것이 있다면 본선 2R와 3R를 같은 팀을 만나 그 아이들과 친해졌다는 것이다. 3R를 끝나고 심판 분께 부탁해서 4명이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그 때 심판분이 참 보기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 팀과는 전화번호도 교환할 정도로 친해졌다. 

끝으로, 나는 5월 한 달을 토론에 몰두했다. 상대팀이 나이를 물어 고 3이라고 하면 놀랬던 그 표정. 그 표정이 암시하는 고 3이라는 많은 것이 제약받는 상황에 처한 우리가 토론 대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학업과는 별개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토론은 어려운 것,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라는 막연한 것에서 벗어났다. 또한, 내가 준비한 나의 의견만이 진리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 토론이라는 것도 알았다. 예선 전날 토론 대회가 그저 막막하고 포기하고 싶었던 내가, 본선이 지나고 나서 장문의 소감문을 쓰는 것 자체가 내가 성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아직 나는 토론은 재미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준비과정이나 토론이 쉽지만은 않았으니깐 말이다. 그러나 이전의 나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나를 기대해본다.

한국디베이트신문  Editor@KoreaDebate.org

<저작권자 © 한국디베이트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