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2년간을 카피라이터로 살아왔다.

카피라이터라고 하면 복사 잘 하시겠네요, 하던 시절부터 최고의 선망직업으로 손꼽던 시절까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날들을 무박으로 봉사한 결과 서른 중반에 회사의 이사로 발탁되며 더욱 바쁘게, 정신없이, 인생의 전부인 줄로 알고 그렇게 살았다.

아이가 태어났다. 회사에 유축기를 메고 다니며 모유를 먹였다. 하지만, 집에 있는 아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커 가는 것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이젠 정말 곁에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을 조금씩 정리했다. 그러나, 나같이 바쁜 게 체질이었던 사람은 어떤 환경이 되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모양이다.

미래의 Great Debater를 안고 있는 박수희 코치

교육 쪽으로 저절로 관심이 갔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주변에서 글을 좀 다뤄봤으니 논술이 어떻겠냐고 권했다. 그래, 가다보면 길이 나오겠지.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논술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다보니 토론이 나왔다. 좋아, 그런데 책만 읽고 토론하면 아이들이 골고루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찾아가며 만난 길이 디베이트였다.

나는 ‘포맷이 있는 토론’이라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 내가 찾던 게 있었네 라는 반가움으로 눈앞에 불이 탁 켜지는 것 같았다. 마침, 따끈따끈한 디베이트 코치 양성과정이 개설되어 있었다. 한 치의 망설임없이 등록했다.

초기의 양성과정은 그야말로 교육의 ‘얼리 어답터’들의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수강생들의 이력도 다들 대단했다.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감사히도 기초 마스터 캠프에 투입될 몇 명의 코치 중에 나도 포함됐다. 투게더디베이트클럽 최초의 캠프라 모두들 바짝 긴장하고 열심히 했다. 지금도 수업과 캠프를 함께 했던 초기의 멤버들에게 깊은 동지의식을 느낀다.

그 이후, 나는 구월여중 방과후 수업, 한겨레 문화센터 고등반, 대치동 수학원 중등반 등을 두루 거쳤고 지금은 대구 토요디베이트 학교와 경명여고 방과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돌아보면 1년이다. 그런데 10년 동안 일어날 일들이 지나간 것 같다. 이젠 어딜 가도 토론이 아니라 디베이트라고 한다. 386세대 학부모들의 문제의식, 자기주도 학습력의 부상, 수업의 주도권은 학생들이 가져야 한다는 오랜 물음에 대한 해답... 이런 것들을 디베이트가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리라.

나에게 왜 디베이트 코치를 하세요?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아이들에게서 너무 재밌어요, 다음엔 제대로 말할 거예요, 듣기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어요, 라는 소감을 듣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세 시간 수업에 단 일분도 쉬지 않고 몰입했다가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로 뛰어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그래, 저 아이들이 나중에 세상을 바꿀거야, 하는 믿음이 생긴다. 내가 디베이트 코치라서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에 어찌 다행과 뿌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 아이는 이제 2학년이다. 가끔 수업 준비하는 내 옆에 다가와 엉덩이를 들이밀며 “엄마, 나도 엄마가 하는 그 디베이트라는 것 좀 해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또 한번 디베이트다. 세상 어떤 공부가 아이들에게 미리 해보고 싶어서 몸이 달게 만들 수 있을까.

박수희 투게더 디베이트 클럽 대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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