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생들에게 있어 수업 50분의 긴장과 압박(?) 이후에 찾아오는 쉬는 시간 10분은 소중하다. 그 잠깐 동안, 허락된 자유를 최대한 만끽하느라 복도와 교실엔 과장 섞인 분자 운동과 웃음꽃이 피어나며, 빌려준 교재를 되찾으러 가는 길에 화장실 용무를 해결하고, 선생님께 질문을 하는가 하면 정수기 앞과 멀리는 매점까지 거쳐 교실을 찾아 이동하고 다음 시간을 맞는다. 그 짧은 휴식, 막상 친구들과 수다 떨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이스크림에 달콤함이 사라지면 ‘달콤한 후식’이 될 수 없듯이, 비록 10분이지만 50분의 억압에 맞먹는 질량의 ‘달콤한 휴식’의 균형은 사라져버린, 고통스런 학교생활이 되고 말 것이다.
교육의 본질은 ‘소통’에 맞닿아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저자와 소통하는 ‘독서’가 그러하고,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사제 간의 ‘교수학습’ 자체가 ‘소통’이며, 휴식도 생물학적인 소통의 일환이고, 독서든 교수학습이든 그 다음에 와야 할 후속단계가 곧 자신과의 소통이라는 내면화 과정이다. 학생이 복습을 통해 스스로 학습을 완성하는 과정도, 교사라면 누구라도 지향하는 수업의 가치도 결국 막힘의 병통이 없는 ‘소통’일 게다. 

2.

막힘없이 잘 통하여 병통이 없는 소통세상을 위한 마지막 봉인이 존재한다면 디베이트가 아닐까. 언제인가부터 우리 사회의 병통을 다스리는 처방으로  ‘소통(疏通)’이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그리고 디베이트. 봉건적 침묵의 미덕과 좌우 이념의 장벽에 묶인, 정체된 시간의 역사를 이제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교육에서 불고 있는 디베이트의 새바람이 진일보한 소통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될까.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94년 수능이 처음 실시되던 해, 개인적으로 수능이 교육을 구원하리라 믿었으며, 이어 찾아온 독서도, 논술의 광풍도, 그러나 개별 학습자 개체 내로 회귀하는 나노화된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웠다. 주어진 문제와 답지에서 오직 정답을 고를 뿐, 어떤 문제제기도 봉쇄된 학습환경 속에서 세상의 의제와 타인으로부터 격리된 수능식 학습자가 ‘21세기를 선도할, 문제해결력 있는 창의적 인재’로 자라나기는 어렵다.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된 책상물림 17년차, 배우는 주체이면서도 어디까지나 수업목표 달성의 객체였던 학생들은 토론 현장에서 놀랍게도 변신한다. 인문철학자가 되어 심오하며, 경제학자로서 신랄하고, 열띤 시사평론가가 되어 예리하다. 자신과 무관한 이해관계를 '논리적'으로 방어하면서 결국은 자신의 일상이 변혁되는 일을 체험한다. 원전의 존폐를 놓고 토론하면서 원자물리학을 기초부터 날것으로 공부하고, 에너지 이면의 윤리적 경제적 측면을 깨달아 국제 패권질서를 이해하고 차세대 신재생 에너지를 담당할 주체로서 성장해 나아가는 ‘주체적인’ 공부는 값지다. 오지 선택형 시험문제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윤리적 자기성찰, 민주의식의 내면화까지, 진정한 성장이란 이런 것이 아니던가? 또한 진정한 수월성 교육도? 학생들은 오늘의 토론이 끝나기가 무섭게 묻는다. 다음 주 타픽은 뭐죠, 선생님? 얘야, 기말고사가 코앞인데? 소통 없이 정체(停滯)된 세상의 마지막 봉인- 디베이트를 경험한 그들의 변신은 무죄다.

3.

관중의 입장에 선 타인의 존재가 개인의 과제수행에 미치는 역할을 연구한 코트렐(Cottrell)의 사회적 촉진 효과이론이나,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형 교육철학의 바탕이 된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 ZPD(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의 개념은, 토론을 통한 학생의 인지발달을 설명한다. 최근 한국의 교육철학의 기저가 된 사회적 구성주의는, 학생의 인지발달이 ‘놀이 규칙’이라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동의 인지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적 유희규칙의 조련사로서 디베이트 교사는 히딩크의 코칭역할을 수행한다. 모든 디베이터는 잠재된 영표요, 지성이다.
그리고 종편방송에다 소셜미디어의 시대가 열렸다. 단순히 교사가 가공하여 제공하는 주입만으로 지식이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내재된 비고츠키의 주장은 특히 현대의 정보화의 홍수 속에서 빛을 발한다는 의견을 적극 지지한다. 정보화, 다양화, 세계화에서 나아가 지식 융합의 모토 아래 우리는 자칫 길 잃은 정보의 유목민이 된다. 넘쳐나는 데이터는 나에게 유의미한 지식이 되기까지 재구성의 단계를 거쳐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는 나와는 상관없는 산재하는 지식에 불과할 뿐이다. 디베이트가 부담할 수 있는 학습의 몫이 바로 거기에 있다.

4.

주어진 지문을 읽고, 주어진 문제에 답하는 폐쇄회로 속의 학생들에게, 세상을 만나는 흥미로운 공부의 기회를 주어야겠다. 읽기, 말하기, 듣기, 쓰기의 언어학습의 행동영역을 동시에 훈련하는 가운데 전인적 인성을 계발할 수 있는 길, 논리적 재구성을 통한 진정한 자기주도의 학업, 그러니 디베이트의 봉인을 보다 활짝 열어야 한다. 오로지 대학입시에 의한, 대학입시를 위한, 대학입시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회구조와, 입시가 곧 국시가 되는 모순을 전면 수정할 대안으로서의 디베이트의 가치가 바로 역설적이게도 디베이트의 한국적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필요인 동시에 사회적 합의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는 중의적 역동성이 곧 한국 디베이트의 현재이다.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디베이트 신문 창간을 축하 아니, 자축하고 싶다. 이성과 감성을, 직관과 비직관의 균형을 도모하는 논리적 소통, 늦은 감이 있지만 디베이트가 마침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므로.

김연숙 코치 / 장훈고등학교 교사

한국디베이트신문  Editor@KoreaDebate.org

<저작권자 © 한국디베이트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