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에 양천 도서관에서 디베이트 코치 과정을 듣고 바로 심화과정에 심판 연수, 그리고 매달 두 번의 코치 모임까지, 나는 이른바 자칭 “디베이트에 미친” 교사이다. 담임으로 있는 6학년 학생들과 매주 수업을 하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차 멀리 춘천에 있는 중학교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방과 후 수업을 정신없이 다니다가 급기야 지난 달에는 춘천에 있는 우리학교 초중고 교장선생님들을 선동(?)하여 교사연수까지 기획했다.

여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디베이트이긴 하지만 사랑도 처음 시작할 땐 다 좋아 보이다가 차차 괴로와지기 시작하는 때가 있다더니 지금 내겐 디베이트가 그런 형편이 된 듯 하다. 이 괴로움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우리 학교 교사연수로 디베이트 연수를 할 때였다. 초중고 선생님들이 고루 섞여있는 데서 2팀으로 나누어 실습을 하였다. 디베이트가 시작되자 남자 선생님들은 순식간에 승부욕에 불타오른다. 아, 눈빛 자체가 달라진다. 얼굴색도 벌겋게 변하고. 평소 보던 모습이 아니다. 디베이트가 끝나고 한 말씀씩 소감을 말하라면 “어이구, 제가 무례한 모습을 보인 건 아닌지요~”하고 붉어오른 자신의 모습을 쑥스러워 한다. 그래서 다 같이 한바탕 웃게 되지만 말이다.

디베이트는 우리 나라 지금 현실에선 불타는 승부욕을 보이기 십상이다. 학생들도 디베이트를 시켜보면 남학생들은 순식간에 전투태세가 된다. 물론 여학생들도 같이 동조를 하지만. 그래서 수업 전에 디베이트 헌장을 꼭 읽는다. 다 읽고 나면 나는 또 꼭 묻는다. 여기 써 있는 귀절, 여러분이 읽은 귀절에 다 동의 하세요...하고. 학생들은 네~하고 대답을 한다. 음, 대답을 하고 나선 디베이트에서는 또 승부욕에 불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고 보면 지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한 공부이다. 우리 사회는 지는 것이 참 부끄럽고 지면 억울한 것이 많은 사회이다. 우리 아이들의 세대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만큼이나 흔쾌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으면 좋겠다. 더 나가서 지든 이기든 우리 전체는 다 같이 한 걸음 나가 무언가를 배우고 얻었다는 토론으로 되었으면 좋겠다.

자, 나의 괴로움과 고민은 이 부분이다. 디베이트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 너그러움과 기다림, 넉넉한 포용력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당장 교사연수에서 보여지듯 교사들도 자칫 ‘쌈닭’ 모습을 잠깐 보이는데.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일부 교사들은 디베이트가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다가온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코치가 내공이 많아야 한다. 무릇 모든 가르침은 가르치는 자의 내공만큼 진실한 법인데 아, 내공이 얕은 나는 참 괴롭다. 

어른인 나도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참 어렵다. 남의 말을 들으면서 어째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뭐 억울한 일이 있나? 저 말들 밑에 있는 마음들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고 헤아려 보라는 말은 많이 들었고 가끔은 그렇게 하려고 애도 쓰는데 이 디베이트를 할 때는 영낙없이 싸움꾼이 된다. 저 얘기가 끝나면 이 얘기를 해야지 하는 생각만 바쁘게 하고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보다는 자기가 할 말을 생각하느라 바쁘다. 경청, 마음까지 들어주기 해보자고 노래를 불러도 잘 안 된다. 이 역시 나는 괴롭다.

그런데 2차 디베이트 대회에 참가한 우리 반 남학생이 참가 소감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젠 남의 말이 들려요.” 같이 참가한 여학생은 대회 날 아침 손바닥에 “공격적인 말투 X”라고 써서 대회장에 갔다. 디베이트를 하다가 공격적인 말투가 나오면 손바닥을 펴서 볼 거라나. 코치는 괴로워도 학생들은 전진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 디베이트가 즐겁고 기대된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디베이트에 ‘미친’ 내 꿈을 이야기하였다. 나는 어른으로 지금의 이 사회의 밀어부치기 식의 여러 현상들이 부끄럽다, 여러분이 성인이 되었을 그 때는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6개월이고 1년이고 모두가 이익이 되는 결론과 방법을 찾기 위해 공개토론을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그래서 나는 디베이트에 미쳤노라고.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매주 모여 디베이트하는 그 날까지!

유경예 코치 / 서울 전인새싹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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