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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을 Great Debater로 키울 거에요!"<케빈이 만난 디베이트 코치> 김지영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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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2.15  21: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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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베이트 열풍이 불고 있다. 서로 다른 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디베이트에 헌신하고 있다. 궁금하다. 어떤 사연으로 디베이트에 뛰어들게 되었고,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궁금증을 풀고자 케빈리가 한국 디베이트 코치 열전을 시작한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2012년 2학기 명지대 토론지도 석사과정에서 디베이트를 배운 김지영 코치님이다. <편집자주>

본인 소개를 해주신다면.

김지영입니다. 한양대 교육대학원 역사교육을 전공했는데, 결혼과 함께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었습니다. 7살 5살 두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무언가 자기계발을 위한 계기를 찾다가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평생교육학과의 기업교육전공으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인 5학차였지요.

디베이트 과목을 수강하게 된 계기는?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라, 무슨 수업을 들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과대표로부터 디베이트 과목에 대한 적극적인 권유를 받았습니다. 과대표는 학기초 있었던 MT에서 디베이트 오리엔테이션을 듣고는 ‘무언가 다르다’며 권유했습니다. 처음에는 디베이트라는 용어조차가 어렵게 느껴져서 주저했지만, 모험하는 기분으로 수강신청했습니다. 그러니까 수강신청 마지막 날 마지막 순간에 이 과목을 선택해서 듣게 된 것입니다.

   
   명지대 디베이트 수업 중인 김지영 코치

디베이트 수업은 어땠습니까?

제가 바로 주입식 암기식 교육의 산증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수업과 두 번째 수업은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간 것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청이 안되었던 것이죠. ‘잘 듣지를 못하면 수업이 제대로 안되겠구나’는 생각에 이후에는 열심히 들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니 차차 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남들과 이야기할 때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이 수업만큼은 집중해서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수업이 어려웠나요?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어렵지도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계속 열심히 참여한 것같습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첫번째 실습을 하고 나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저의 실체를 알아버린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디베이트 형식이 체화되고, 비판적 사고와 비판적 듣기가 익숙해지면서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내가 달라졌구나’라는 생각이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디베이트를 배우고 나서 일상생활이 달라졌나요?

많이 달라졌죠. 이전에는 생각하고 말하는 일에 대해 그렇게 주의를 하지 않았던 것같습니다. 그런데, 디베이트를 하고 나서는 제 의견을 정확히 전달하고, 또 제가 듣기에 미진하면 되물어 정확하게 사안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유치원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다른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스스로 느꼈습니다.

가족 사이에서는요?

사실 아이를 키우면 사고가 육아에 집중하기 때문에 대화 수준도 그에 맞게 퇴보하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디베이트를 하고 나서는 남편과 이야기할 때도 조리있고, 명확하게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대학원 교수님들에게도 들었습니다.

이번에 한국디베이트코치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소감은?

대단한 성취감을 느낍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무엇인가 이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격증을 취득하니 디베이트 코치로서도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듭니다.

   
   디베이트 심판 워크샵에 참가했던 명지대 동료들.
   왼쪽부터 은현주 코치, 전은숙 코치, 김지영 코치.

이번에 화성에서 열린 디베이트 대회에 심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처음으로 디베이트 심판을 봤습니다. 물론 지난 번에 열린 디베이트 심판 워크샵은 열심히 참여했었구요. 모두 6차례의 디베이트에 참여했는데, 3번은 심판으로, 3번은 타이머로 활동했습니다. 초등 부문을 맡았는데, 역시 초등이라서인지 미숙하게 느껴지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4라운드에서 보여준 고등결승전은 아주 좋았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 학생들이 너무 멋있게 보였고, 우리 아이도 저렇게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 스스로도 디베이트 코치를 잘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그만큼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에게 명지대 토론지도 석사과정의 수업을 소개한다면?

디베이트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기 때문에 수업도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이는 말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본인이 꼭 한번 겪어봐야 합니다. 이번에 명지대에서 토론지도를 특성화애서 석사과정을 만들었는데,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할 일도 많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디베이트의 아버지’인 케빈리 교수님이 계시니 좋은 기회입니다.

MDF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이번에 디베이트 수업을 끝내고 그 수업을 들은 학생들 모두가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수업을 들은 학생들끼리 ‘명지디베이트가족’이란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영어로 하면 명지디베이트패밀리가 되겠네요. 그 약자가 MDF입니다. 저희는 저소득층 학생들, 디베이트에 접근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상대로 디베이트를 확산시키는 일을 비영리로 해보고 싶습니다.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그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지요.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매주 모여 디베이트하는 그날까지 MDF가 함께 하고 싶습니다.

향후 계획은?

디베이트를 더욱 배우고, 또 알리고, 또 가르쳐보고 싶습니다.

처음에 디베이트를 접하면 주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조언해주자면?

선글라스를 끼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달리 보면 그동안 못보던 것들이 보입니다. 디베이트는 이 틀을 바꾸는 일입니다. 처음부터 큰 것을 얻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우선 디베이트의 세계에 발을 담그면, 설혹 중간에 포기해도 얻는 것이 클 거에요.

두 아드님이 있습니다. 어떻게 키울 것인지요?

아직은 7살 5살이라 본격적으로 디베이트를 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우선은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대화를 많이 해보려고 해요. 그러다가 4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디베이트를 가르칠 거에요. Great Debater로 키워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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