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는 변우진 변호사의 글이다. 변우진 변호사는 한국의 서울대를 거처 미국에서 법대를 나와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다. 탤런트 변우민씨의 친형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에서 법 공부를 하면서 느낀 디베이트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디베이트신문의 창간을 축하하고 있다. <편집자주>

오늘 아침 한국 신문을 보니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었다.  

[자본주의 4.0 제3부 - 교육에 답이 있다] [7] 해외 석학들이 본 한국 대학교육
해외 석학 87명 설문 - "한국 학생 질문 잘해" 7% 뿐, 질문 많이 하는 美 학생은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 교과서 벗어나야 혁신 가능
대학, 산업화 시대 인력만 양산 - 일방적 지식 전달에만 치중, 독창적·혁신적 사고 못 키워… 교육이 잠재력 끄집어내줘야

카이스트에서 해양시스템공학을 가르치는 전(前) 노르웨이 공과대학의 폴 베르간(Bergan) 교수. 조선해양 분야에 적용되는 기초과학의 세계적 석학인 그는 2009년 9월 처음 한국 대학에서 수업을 하면서 당황했다고 한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이 말을 듣기만 하고, 토론은커녕 아예 질문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오히려 그가 "혹시 궁금한 것 없느냐" "이해 안되는 내용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1~2명 정도만 질문할 뿐이었다.
 
본지가 한국연구재단에 의뢰해 한국 대학에서 연구·강의하는 해외 석학(碩學) 8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한국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질문을 자주 한다"고 답한 비율은 6.9%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가르쳐본 외국 학생과 한국 대학생을 비교할 때 "한국 학생이 더 적극적으로 질문한다"고 대답한 석학은 단 2명(2.3%)이었다.
 
일방적 지식 전달형의 이같은 한국식 대학교육은 산업화 시대 인력을 키울수는 있을지 몰라도, 대학생 전반의 지적(知的) 수준과 창의력을 업그레드하고 혁신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주의 4.0시대에는 맞지 않는다고 그들은 지적했다.
 
◇질문 없는 강의실
 
스웨덴 왕립과학원 회원으로 노벨위원회 물리위원장을 역임한 스웨덴 예테보리대 물리학과 매츠 존슨(Jonson) 교수(건국대 초빙교수)도 "한국 학생들은 매우 큰 꿈을 꾸고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강의나 토론을 할 때 질문하기를 망설여 깜짝 놀랐다"고 했다. "기존 학문에 도전하고 비판하지 않는 학생들이 자라서 세계를 이끌 사회·경제·문화적 혁신을 이끌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고용 없는 성장' 구조로 고착화된 자본주의 3.0시대와는 달리, 자본주의 4.0시대에는 창의적 인재가 나와 사회적 부가가치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산업구조와 학문의 틀을 깨기 위해 경쟁하는 인재들이 배출돼야 가능하다. 미국의 기업과 정부, 대학에서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조지 퍼스트(Furst) 교수는 "미국 학생들은 교수가 준비한 강의 내용을 벗어나는 질문도 마구 던져 교수와 학생 모두가 새로운 시각에서 공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석학들은 듣기만 하는 한국 대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초·중·고교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주입식 교육을 통해 배출된 인력은 자본주의 3.0시대에는 생존할 수 있지만, 미래 사회는 전혀 다른 인재상(像)이 요구된다고 외국인 교수들은 지적했다. 조지 퍼스트 교수는 "현재 한국은 국가적 과제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산업과 연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초·중·고교에서 '시험 준비'를 위한 공부만 하고, 대학 강의도 이렇게 진행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4.0에 대비한 교육을"
 
해외 석학들은 "혁신을 이끌 인재가 나오려면 교과서 중심의 교육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베르간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외우고 정형화된 종이 시험을 준비한다"며 "반면, 내가 가르쳐 본 노르웨이와 미국 학생들은 책에 적힌 지식을 벗어나 다른 사람과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 자신만의 '독립적인 생각'을 키운다"고 말했다.
 
해외 석학의 절반 이상(61%)이 "한국 학생들의 지적(知的) 수준이 우수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자본주의 4.0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교육방식은 당장 바뀌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예컨대 "대학에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문제의식을 키워주고"(51%), "기업에서 필요한 실무능력(31%)을 가르쳐야 한다"고 답했다.
 
베르간 교수는 "한국의 학교 시스템은 '개인의 지식'을 가르치는 데만 집중됐다"며 "이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했다. 퍼스트 교수는 "그동안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 학생들이 누구보다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국적이 다르거나 생활 수준이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1/12/12, 김연주 기자)

 
이 기사를 읽어보면 한국의 학생들은 시스템 자체가 '함께 토론해보자'가 아니라 '이미 알려져있는 지식을 선생이 학생에게 주입시키는 방식'에 익숙해 있어서 질문을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풍토에서 성장하고 있는 듯 합니다. 강력한 국가 주도형 경제 패러다임에서는 '지금 이 일을 내가 왜 하는가', '더 잘 하는 방법은 없는가' 따위의 질문보다는 '어떻게 하면 시킨 일을 사고치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인간들이 산업의 역군으로 더 바람직할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창의적 인재'를 요구하는 '자본주의 4.0' 시대에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 주위 사람과 끊임없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지 않는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이  구성원으로 모인 경제도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강의 한 시간 내내 학생이 손을 드는 경우는 한번 있을까 말까 정도였습니다. 그나마도 '교수의 권위에 눌려서' 학생이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다하는 경우는 아주 극히 드물었습니다. 한시간 중에 교수님 혼자서 떠드는 시간이 99% 였습니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고시 삼관왕에 빛나는 고승덕 씨는 법과대학 4 년 중에 학교에 나온 날이 거의 없었고 시험만 계속 잘 보아서 합격하니 되더라고 자서전에  쓰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제가 미국에 유학을 와서 법과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에는 교수-학생 간의 토론이 수업의 거의 5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내용 자체도 한국에서는 '법조문'의 해석 내지는 '학설'에 관한 강의가 대부분을 차지한 반면, 미국의 법과대학은 실제 판례를 놓고 '다수 의견', '소수 의견'에 대한 학생 나름의 의견 개진이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즉, 미국의 법과대학생들은 미국 대법원 판사의 의견에도 나름대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풍토는 시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국에서는 기말시험에 '알면 쓰고 모르면 못쓰는' 그런 문제가 늘 나왔습니다. 그러니 잘 외운 학생이 고득점을 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사내 변호사의 책임한도에 관해서 논하시오'같은 질문은 훌륭한 기말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전날 답안을 딸딸 외운 친구는 일필휘지 답을 써내려가면 A학점을 받게 되고 답안을 외우지 못한 친구는 학점이 나쁠 수 밖에 없습니다. 답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는 나오지 않습니다.  미국 법과대학에서는 반드시 '사유의 과정'을 묻는 시험 문제가  나옵니다. 사유의 과정을 요구하지 않는 문제로는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실제 상황을 주고 'CEO 가 회사 공금을 횡령하면서 사내 변호사인 당신의 도움을 요청해왔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가 나옵니다. 그러니 미국에서는 처음에 문제를 받아본 학생들은 최소한 10-15 분은 생각을 해야합니다. 그리고 답을 쓰면서는 'Issue – Rule of Law – Analysis - Conclusion줄여서 IRAC'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슈가 무언지 찾아내면 상당한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당되는 조문을 찾아내고 (그러면 점수는 또 가산) 그리고 Fact를 이 이슈와 법조문에 적용시키고 분석해야(Analysis) 합니다. 대개의 교수들은 이 과정까지만 잘 나갔으면 결론에는 큰 점수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유 과정이 건강하면 결론은 달리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수학과 아주 흡사합니다.)

최근에 한국도 미국식의 로스쿨을 만들었으니 앞으로 미국식의 사유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만 시간은 다소 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국과 90% 이상 법이 같은 미국의 경우 영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토대로 디베이트 의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교육을 받은 인간들이 사회에 나가면, 어떤 복잡한 문제가 생겨도 거기에서 핵심적인 쟁점(Issue) 를 찾아내어서 거기에 걸맞는 조문(Rule of Law) 를 적용시키고 토론을 거쳐서 결론을 얻어내는, 건전한 민주주주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변호사로 소송에 참가해보면 한국에서 오신 분들과 미국에서 교육을 받으신 분들은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우선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개인적으로 똑똑한 분들이지만 이슈를 찾아내는데 한참 시간이 걸리고 팩트와 감정의 구분이 잘 안 되어서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고 결론이 나와도 계속 아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토론을 거쳐서 '승패'를 가르거나 '윈윈'으로 가는 훈련이 부족했던 탓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베이트 훈련을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건강한 구성원이 될 수 없고 나라도 계속 후진국으로 남습니다. 한국이나 대만 같은 나라들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성장을 하였고 똑똑한 국민들이 합심하여 반도체를 비롯한 오늘날의 IT 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나라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회에서는 후진적인 몸싸움과 폭행을 자행하여서 대외적인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지도자들이 디베이트의 훈련을 받지 못한 결과입니다.

현재 미국 연방의회의 약 70% 이상이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최근에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국회진출이 거의 50% 가까이 된다고 하니 변호사들이 국민들의 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로서 약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잠시 법과대학에 대해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런 사람들이 강의실에서 어떤 훈련을 받고 어떤 기말시험을 쳤고 어떤 변호사업을 해왔는지가 입법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장유유서'가 큰 덕목 중의 하나인 소위 '유교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디베이트'가 바로 먹히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존과 직결해있는 '창의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디베이트' 식의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인들은 성실하고 근면합니다. 머리도 빼어납니다.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10 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나라입니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라고 할 '디베이트' 교육이 큰 성공을 거두어서 일상생활뿐 아니라 모든 관, 민의 의사결정과정이 더 민주화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날을 하루속히 앞당겨야 하겠습니다. 

 변우진 변호사

한국디베이트신문  Editor@KoreaDebat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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