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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차 인디월을 마치고.. <부제:한박수영샘께 바치는 헌사^^>김민영 전문코치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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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06  09: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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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0월 26일 17차 인디월을 진행했던 김민영 전문코치의 후기이다. <편집자주>

여성학을 주제로 인문학 디베이트 월례모임을 한다는 소식이 퍼진 후, 다양한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민감한 주제 아니냐는 우려부터 너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입장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여주신 분은 금번 인디월 디베이트 실습에 참여해주신 한박수영선생님.^^

한박수영선생님은 여성학으로 디베이트 컨텐츠를 만드시는 게 본인의 꿈이라고 할 정도로 평소 여성학과 페미니즘에 대해 조예가 깊으신 분이십니다. 반색을 하시며 디베이트 실습에 참여하신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첫 번째 준비모임(준비모임이라는 컨셉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닌데, 금번 주제가 워낙 평소 접하지 않았던 분야인 관계로 사전 준비모임을 몇차례 가졌었습니다.)에서 우리 모두는 깜짝놀랐으니까요. 한박수영선생님께서 그 아름다운 머리를 모두 밀고 모자를 쓴 채로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일명 삭발.^^;;;

“앗, 서...선생님!! 어쩌다.. 이런...”

말을 잇지 못하는 저희에게 “그냥요. 머리라도 신경을 안쓰고 싶어서요.”라고 쿨 하게 답하시는 한박수영선생님. 그러나 그 말이 왜 저한테는 “보다 이 주제에 집중하고 싶어서요!”로 들렸을까요.

그때부터 저의 비상사태는 시작되었습니다. 디베이트 실습에 참여하는 분이 저정도의 열정을 보여주시는데, 브리핑이 엉성해서야 되겠나 싶은 생각 때문에.. 뿐만 아니라 귀한 시간내어 들으러 와 주시는 전국의 코치님들께 그만한 보답을 해 드려야 한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걸 현타라고 하나요? 17차 인디월은 그렇게 제게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매시간 매분 매초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귀로 듣는 모든 이야기와 눈으로 읽는 모든 텍스트들을 주제에 연결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책 내용에만 매몰되어 있던 시야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여성사인가에 대한 저자의 설명 이전에 이해되어야 하는 여성운동의 역사가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책속에 다 담아내지 못한 저자의 삶과 그 속에서의 고민과 번뇌도 차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여성사는 타자로서 살아온 삶의 경험이 던진 문제의식을 해결할 수 있는 최종 해결책이요, 모든 사유의 종합이었습니다. 주제의식이 명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성학으로 오랜만에 열리는 17차 인디월을 준비하겠다 호기롭게 약속했지만, 실은 여성사에 대한 고민은 저에게도 생소한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소한 영역이 이제는 제 사유안에서 ‘확실히 중요한 분야’로 자리매김 하였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보이는 세상도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제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제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약해서, 사랑하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많은 모순과 문제의식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사는 동안에도 오래묵어 고치기도 힘든 이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왜 여성사인가>의 저자 거다 러너Gerda Lerner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책 표지

가부장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은밀하게 진행된 차별이자 타자화의 산물이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관계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하늘 아래 모두 평등하게 태어난 인간 중 절반인 여성은 그 평등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왔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여성들이여 단결 투쟁하라를 외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남성적 해결방법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여성과 남성이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서 마음이 자유로운 곳, 그래서 지배와 서열이 사라진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여성과 남성의 결정적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PPT 내용 중에서

“핵심은 여성이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여성화를 이루는 것”이라는 메리 비어드(영국 역사학자)의 발언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적확한 표현입니다.

현재 인류는 수많은 문제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 중에는 기후변화와 같은 재난도 있지만, 경직되고 소통이 안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저자는 후자의 문제(어쩌면 전자도)를 바로 남성적 패러다임의 결과라고 지적합니다. 계서제에 따른 수직적 위계질서가 낳은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수평적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이는 여성적입니다. (모든 개별 여성이 그러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수직적 패러다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은 수평적이고 유연한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경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여성사를 통해 여성을 인류 역사의 주역으로 바로 세우는 일로부터 이 문제의 해법을 찾자고 말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여성이 제 역사를 찾지 못하면 여성의 미래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도 불투명해진다는 논리입니다. 굉장히 스케일이 크고 파워풀한 해결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의 여성운동이 권력을 쥔 남성들을 상대로 우리에게도 동일한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정치투쟁의 방식이었다면, 여성사를 필두로 한 여성운동은 스스로 주인이 되는, 나아가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투수로 기꺼이 나서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그 당당함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상대를 적대시 하지 않으면서, 해묵은 문제를 명확히 풀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유연한 사고와 소통이 가능한 여성들만이 내놓을 수 있는 해법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여성인 것이 실로 자랑스러웠습니다.